Friday, May 15th, 2026

텅 빈 ‘코스타 델 솔’과 2천 원짜리 물 한 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3년 전 남편과 아이가 다녀온 대만 ‘부자 여행’은 아직도 우리 집 식탁의 단골 안줏거리다. 버스를 놓칠 뻔한 찰나 길을 알려준 현지인, 30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 생명수 같았던 망고 빙수 얘기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지난 어린이날 연휴, 우리 가족은 다시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달려간 곳은 동네 과일가게였다. 알록달록한 열대과일 사이에서 나름 주부 9단의 눈썰미를 발휘해 매끈한 애플망고를 골라 담았더니, 주인이 대뜸 한국에 언제 돌아가냐고 묻는다. 모레 간다고 하자 그는 내가 고른 것들을 싹 다 무르고는 껍질이 끈적한 망고를 들이밀었다. 관광객에게 묵은 재고를 떠넘기나 싶어 묘한 불쾌감을 안고 숙소에 오자마자 칼을 댔는데, 웬걸. 샛노란 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강의 단맛은 내 어설픈 의심을 단박에 비웃었다.

길거리에서 아이가 뭘 좀 흘렸다 싶으면 어디선가 불쑥 휴지가 날아오고, 비틀거리는 꼬마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 국립고궁박물원에선 우리가 찾는 유물을 보여주기 위해 안내원이 전시실 두 곳을 가로질러 직접 에스코트를 해주기도 했다. 대만이 아이에게 ‘친절한 나라’, ‘또 가고 싶은 곳’으로 각인된 건 이런 사소하지만 다정한 온도 덕분이었을 거다.

이런 따뜻한 기억을 안고 돌아온 한국 관광의 민낯은 어떨까. 최근 서울 광장시장을 찾은 한 외국인은 식당에서 물값으로 2천 원을 내야 했다. 한국 식당에서 물값을 따로 받는 게 낯설어 묻는 외국인에게 상인은 “여긴 외국인이 많아서 그렇다”고 응수했다. 물값을 받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외국인이니까 다르게 대한다’는 저변의 인식이 섬뜩하다.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제2여객터미널로 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눈이 오니 5만 원을 달라고 요구한 택시 기사, 방한한 일본 걸그룹의 승차를 거부한 씁쓸한 해프닝까지. 야놀자리서치의 보고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 중 ‘태도와 환대’에서 가장 큰 부정적 감정을 느꼈다는 대목은 단순한 통계를 넘어 뼈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사람을 품어내는 소프트웨어가 이 모양인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하드웨어라고 다를 리 없다. 지난달 22일 한낮에 찾은 경기 시흥시 거북섬 일대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스페인의 휴양명소 ‘코스타 델 솔’을 꿈꾸며 야심 차게 조성된 인공섬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서핑장 ‘웨이브파크’가 있는 곳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무색할 지경이다. 텅 빈 식당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던 50대 사장님의 넋두리가 귓가를 맴돈다. “유령섬이나 다름없어요. 점심때인데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고, 아예 공치는 날도 부지기수니까. 상가는 차고 넘치는데 죄다 비어 있고 임대료에 대출이자 낼 생각 하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4~5층짜리 건물 수십 동 중 불을 밝힌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임대 문의’가 적힌 유리창 너머 집기류엔 뽀얀 먼지만 소복했고, 아예 건물 전체가 통으로 비어있는 기형적인 풍경도 흔했다.

수자원공사와 시흥시가 마리나와 생활형 숙박시설을 아우르는 해양레저 복합단지를 만들겠다며 청사진을 그린 게 2017년이다. 하지만 상가건물 관리단 등으로 구성된 거북섬발전위원회 쪽 얘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처참하다. 점포 4천여 개 중 실제 입점한 곳은 300곳 남짓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버티다 못해 문을 닫은 곳을 빼면 실가동률은 바닥을 친다. 그런데도 주변엔 여전히 대규모 상가가 포함된 주상복합건물 서너 동이 신축 중이어서 과잉 공급의 악순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분양대금 반환 소송이 터져 나오는 아수라장 속에서, 6300㎡ 규모로 문을 연 국내 최초 관상어 테마파크 ‘아쿠아펫랜드’ 역시 일부 판매점을 제외하면 5층짜리 건물 4개 동이 텅 비어 부동산마저 셔터를 내렸다.

시흥의 랜드마크라는 웨이브파크가 존재하긴 하지만 철저히 그 서핑장 안에서만 지갑이 열릴 뿐, 외부 상권으로 온기가 퍼져나가는 낙수효과는 아예 설계조차 되지 않은 구조다. 대관람차나 사계절 키즈파크 같은 굵직한 연계 사업들이 줄줄이 엎어지면서 건물주도 임차인도 그저 뚜렷한 대책 없이 몇 년째 의미 없는 버티기에 돌입한 실정이다.

시흥시가 뒤늦게 거북섬 활성화 전담팀(TF)을 꾸려 홍보관을 짓고 하와이안 페스티벌 같은 행사를 열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50억 원을 쏟아부어 거북섬 센트럴파크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청사진도 또 내놨다. 시 관계자는 지금이 ‘인내의 시간’이라며 계획대로 시설이 들어서면 나아질 거라고 항변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지우기 어렵다. 수천억을 들여 으리으리한 인공 파도를 만들고 스페인의 태양을 흉내 낸들, 정작 그곳을 채워야 할 사람들의 발길은 뚝 끊겨버렸다. 한쪽에서는 물 한 잔에 2천 원을 부르며 눈앞의 얄팍한 이익을 좇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생 구조나 수요 예측 없이 콘크리트 상가만 끝없이 쌓아 올리는 중이다. 관광의 본질은 지도 위에 그려놓은 화려한 랜드마크 껍데기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끈적한 망고를 건네며 짓던 투박한 미소에 있는 것일까. 모래성처럼 쌓아 올린 유령섬의 텅 빈 상가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