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문화계는 ‘과거로의 귀환’과 ‘혈연’이라는 키워드를 다룬 두 작품으로 인해 각기 다른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브라운관에서는 뜨거운 논쟁 속에 막을 내린 드라마가 있었고, 스크린에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다룬 묵직한 예술 영화가 도착했다.
꿈으로 끝난 인생 2회차, 시청자의 허탈감
지난 25일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둘러싼 온라인상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드라마는 재벌 그룹 순양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던 비서 윤현우(송중기 분)가 순양 창업주 진양철(이성민 분)의 손자 진도준으로 회귀해 치열한 승계 전쟁에 뛰어드는 내용을 담았다. 소위 ‘을’을 대표하는 윤현우가 ‘갑’의 가족이 되어 그들을 밟고 올라서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특히 진양철 회장이 진도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서사는 극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진양철 회장의 퇴장 이후, 시청자들의 이목은 결말에 쏠렸다. 과연 진도준으로 회귀한 윤현우가 운명을 거스르고 순양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을 죽인 배후는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 것이다. 많은 애청자는 진도준이 순양의 계열사들을 차례로 장악했듯 회장 자리에 오르는 ‘사이다’ 결말을 기대하며 마지막 회를 기다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시청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1회에서 총상을 입고 추락했던 윤현우가 일주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며, 진도준으로 살았던 17년의 인생이 모두 ‘꿈’ 혹은 ‘빙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윤현우는 청문회에서 진영기(윤제문 분)가 진도준 사망 사건의 배후였으며 자신 또한 공범이었다고 참회한다.
이러한 ‘꿈 결말’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원작 웹소설에서는 진도준이 현실로 돌아오지 않고 순양의 회장이 되어 승리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는 인과응보를 택하며 윤현우의 참회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진도준에게 몰입해 달려온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라며 원작의 노선을 따랐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면, “재벌 시스템에 종속되는 원작보다 윤현우의 참회로 끝맺는 것이 드라마적 메시지로는 더 적절했다”는 옹호론도 존재한다. 논란 속에서도 드라마는 26.9%(닐슨코리아 기준)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부부의 세계>에 이어 JTBC 역대 2위라는 성적표를 남겼다.
이국에서 마주한 핏줄의 의미, 영화 <니나 로자>
화려한 판타지로 대리 만족을 주었던 드라마와 달리, 제네비에브 듀라드-드 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니나 로자(Nina Roza)>는 캐나다와 불가리아를 오가는 솜씨 있는 연출을 통해 예술, 망명, 그리고 부모의 유산에 대한 시적인 성찰을 보여준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묵직한 주제 의식을 다루고 있지만, 다소 지나친 엄숙주의가 대중적인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화는 가족 파티에서 겉도는 젊은 여성, 로자(미셸 촌체프 분)의 우울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불가리아 출신의 예술 큐레이터인 아버지 미하일(갈린 스토예프 분)은 아내와 사별한 후 퀘벡 사회에 정착해 ‘미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로자는 자신의 아들과 헤어진 후 아버지의 집으로 잠시 돌아오지만, 불가리아어를 가르치지 않고 뿌리를 잊게 한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죽은 아내와 로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에 괴로워하며 고국과의 연을 끊고 살던 미하일은, 불가리아 시골에 사는 8살 천재 소녀 ‘니나’의 작품을 감정해 달라는 수집가 크리스티앙의 의뢰를 받고 마지못해 고국으로 향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니나의 그림은 민속 예술 모티프가 가미된 강렬한 추상화로, 소녀는 이를 “우주의 음악”이라 표현한다. 이탈리아의 거물 딜러 줄리아(키아라 카셀리 분)가 니나를 상업적으로 포장하려 드는 가운데, 미하일은 니나(카테리나, 소피아 스타니나 쌍둥이 자매 분)가 진짜 천재인지 확인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지나친 진지함이 남긴 아쉬움
미하일의 여정은 단순한 예술품 감정을 넘어 자신의 기원을 마주하는 과정이 된다. 그는 마을 축제의 모닥불 주위를 돌며 잊고 있던 감정에 휩싸이고, 오랫동안 방치했던 누이로부터 냉대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니나와의 만남은 그가 딸 로자와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유산과 정체성, 그리고 어린 재능을 착취하는 미술 시장의 진정성 문제 등 묵직한 주제들을 던진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색적인 톤과 의도적인 무드 조성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저명한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갈린 스토예프를 주연으로 기용했음에도, 그는 영화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말없이 고뇌하는 ‘코트를 입은 남성 지식인’이라는 전형적인 유럽 예술영화 캐릭터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오히려 보헤미안 시크를 발산하는 줄리아 역의 키아라 카셀리나, 때로는 맹렬해 보일 정도로 뚱한 표정을 짓는 스타니나 자매의 연기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짙은 황토색 필터나 물레 위의 나선형 물감을 달팽이 껍데기와 교차 편집하는 등의 시각적 연출, 그리고 압도적인 침묵을 활용한 사운드 디자인은 감독의 진지한 의도를 강조하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다는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 화려한 회귀물의 결말이 주는 허무함이나, 진지한 예술 영화가 주는 난해함 모두 관객들에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거리를 남기고 있다.